성지순례(4)

  • 입력 2018.11.30 10:29
  • 기자명 컵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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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수 목사
▣ 영월주님의교회 
▣ 전 터키 선교사
 
 

 

데살로니가 (Thessalonica, 행 17:1~9)

 

오늘날 ‘테살로니키’라 부르는 이곳은 인구 100만이 넘는 그리스 제 2도시로, 에게해(Aegean)의 항구 도시이자 동서양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에 자리 잡고 있다. 과거 ‘데살로니가’란 도시의 이름은 빌립 왕의 딸이자, 알렉산더 황제의 이복 누이동생인 ‘테살로니케’(Thessalonike)와 결혼하여 ‘마게도냐’ 왕위에 오른 ‘카산드로스’(Kasandros. BC 388~297)가 BC 315년에 이곳에 성을 재건하고, 그의 아내의 이름으로 이 도시를 명하였다고 전한다. 한편, 이 도시는 BC 49년에 로마의 명장 ‘폼페이우스’가 ‘카이사르’를 피해 도피 생활을 한 곳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강력한 로마제국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임으로써 도시가 계속 발전해오다가, AD 7세기에는 동로마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 다음으로 가장 큰 대도시로 변모하였다. 유럽에서의 첫 번째 선교지인 빌립보 선교를 성공적으로 마친 바울 일행은 데살로니가로 선교지를 옮기게 된다. 빌립보에서 데살로니가의 거리는 약 150km 정도로 하루에 100리 정도 걸었다고 생각해도 4일이나 걸리는 먼 길이다.

 

하지만 데살로니가로 향하고 있는 바울의 몸은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음에 틀림없다.복음을 전하다 악령의 세력과 영적전투를 하고 이 일로 인해 감옥에서 고초를 당했으니 온 몸이 피멍이 들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울 일행은 감옥에서 그들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용기백배하여 다음 선교지로 이동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바울 일행은 빌립보에서 그리 멀지 않은 인근 도시인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를 지나쳐 데살로니가에 도착하였다. 아무리 작은 도시라도 분명 그 곳에는 구원할 영혼이 있었을텐데... 하는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하지만 사도행전의 저자인 의사 누가는 거기에는 회당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기록하고 있다(행17:1). 사실 빌립보에서 사도 바울 일행은 선교의 교두보인 회당이 없는 곳에서 전도하면서 아무도 모르는 낮선 현지에서 복음전도가 얼마나 힘든가를 절실하게 경험하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번에는 회당이 없는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를 건너뛰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또한, 지정학적으로 빌립보는 마게도냐에서 가장 큰 성읍이었고, 데살로니가는 마게도냐의 수도였으니 대도시인 이곳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효과적인 선교전략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그러므로 도미노 현상처럼 이 대도시에서 주변 작은 도시로 자연스럽고 쉽게 퍼져 나갈 것을 예상했을 것이다. 이러한 사도 바울의 예상은 데살로니가전서에 보면 그대로 적중했음을 알 수 있다.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에서 행한 전도로 복음이 그 지역 뿐 아니라 주변에 있는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까지 퍼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7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느니라

8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졌으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 (살전1:7~8 ) 이제 누가는 사도행전 17장 2절과 3절에 “바울이 자기의 관례대로 그들에게로 들어가 세 안식일에 성경을가지고 강론하며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할 것을 증언하였다”고전한다.

 

그러므로 그는 그간 1차 전도여행과 2차 전도여행에서 선교한 방식대로 복음전도의 교두보 역할을 한 회당을 찾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도 바울의 선교전략은 예수님께서 공생애 기간 동안 하셨던 복음전도의 방식과 동일한 패턴을 연상하게 한다. 누가복음 4장에 보면 예수님이 나사렛에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서 구약성경인 이사야서를 통해 구약의 예언된 메시아에 대한 말씀을 강론하신 것과 같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의 전도 결과로 데살로니가에서 헬라인의 큰 무리와 그중 지도급 인사인 적지 않은 귀부인도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4 그 중에 어떤 사람 곧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도 권함을 받고 바울과 실라를 따르나(행17:4))하지만 사도 바울의 성공적인 전도로 많은 교인이 생기자 이를 시기하는 무리들로부터 바울 일행은 큰 핍박을 당하였다. 이들 일행에게 숙소를 제공했던 야손 일가는 큰 변을 당했고 교인들은 로마 황제를 예배하지 않고 예수라는 다른 왕을 섬기는 자들이란 미명아래 고발을 당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신자들은 바울과 실라의 신변의 안전을 위해 밤중에 다른 곳으로 피신시켰다(행 17:4~9).

 

데살로니가에는 역사적으로 비록 오래되었으나 바닥이 잘 포장되어 있는 크고 넓은 로마 시대의 공중집회장소를 쉽게 발견하게 된다. 특히 천 년이 넘는 비잔틴 시대에 세워진 교회만도 무려 20여 곳이 있다고 하니, 가히 이곳에 복음의 큰 부흥의 역사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교회격인 성 디미트리우스 교회는 4세기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하기 직전에 세워진 웅장한 교회였으나, 1917년 데살로니가를 휩쓸었던 대화재로 인해 크게 파손되었다. 하지만 다행히 교회 지하에 내려가자 로마 시대에 회당이 있었던 자리가 잘 보존되어 있음을 보고 깜짝 놀라게 되었다. 바로 이곳 회당을 중심으로 하여복음을 전했던 바울의 목소리가 사방에서 들리는 듯하다! 이제 이곳에서 우리 일행은 사도 바울의 숨결을 느낀 후에 기도하는 마음으로 복음 전도자 바울의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헌신과 열정을 되새겨 본다. 후에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에서 이곳 신자들의 헌신적인 신앙생활의 모습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6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7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느니라(살전 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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