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사라지면(사사기 8:4~17)

  • 입력 2018.12.06 10:14
  • 기자명 컵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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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덕 목사(세인교회)

사사기를 연구하면서 발견한 놀라운 보고가 있습니다. 미디안의 7년 동안의 폭정을 끝내시고 당신의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기드온을 부르실 때 하나님은 깜도 안 되는 기드온을 얼레고 달래셔서 그를 부르셨습니다. 어디 그 뿐입니까? 비위를 맞춰주고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 호칭(큰 용사)도 붙여주시고, 투정부리는 기드온을 향해 오래 참으시면서 끝내는 그를 사사로 부르셨음을 저와 독자들은 지난 호의 글들을 통해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적극적으로 구애(?)하셨던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이 미디안의 대군을 이기게 하신 장본인이셨지만 사사기 7:9절 이후로부터 기드온의 남은 행적과 그의 사악했던 아들 아비멜렉의 기사가 끝나는 9장까지 단 한 번도 등장하시지 않는다는 보고는 충격입니다. 신명기 역사학자의 의도적인 기록으로 여겨지는 ‘하나님의 사라짐’이 주는 기드온의 여정은 말 그대로 세상 사람들보다 더 못한 불신앙인의 극치를 보여주는 비극의 기록들임에 아연실색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전쟁에서 패한 미디안의 패잔병들이 그들이 섬기던 두 명의 왕인 세바와 살문나를 호위하며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북쪽으로 도망가던 1만5000명을 끝까지 추격하는 내용입니다. 기드온의 300 용사는 12만명의 미디안과 아말렉의 연합군을 대파하였지만 아직은 완전히 전쟁이 끝난 것이 아니라 기드온의 입장에서 볼 때 1:50에 해당하는 또 다른 힘에 겨운 패잔병 1만5000명과의 전쟁에서 승리해야 하는 적지 않은 부담감이 남아 있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이들은 아마도 살아남은 미디안의 왕들인 세바와 살문나를 목숨 걸고 지키는 호위 병사들이었기에 정예병들이었을 것입니다. 해서기드온은 이들을 추격하는 것이 많이 힘들고 지쳐있던 차, 잔병들을 추격하면서 숙곳이라는 땅에 도착을 했습니다. 숙곳은 가나안 분배 시에 갓 지파에게 할당된 땅이었기에 동족이 기거하고 있는 땅이었습니다. 그곳에 도착한 기드온은 지친 병사들을 위해 숙곳의 사람들에게 먹을 수 있는 양식을 요청하기에 이르렀지만 사태를 파악하지 못한 숙곳 사람들은 미디안의 보복이 두려워 기드온의 청을 거절합니다.

본문 6절은 이렇게 거절당한 기드온이 남은 전쟁에서 이기면 숙곳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는 서늘한 메시지를 남기고 이번에는 추격하는 길목에 있는 브누엘로 나아가서 똑같은 청을 했지만 결과는 매일반이었습니다. 부아가 치민 기드온은 브누엘에게도 수모를 당한 원수를 갚겠다고 선포한 뒤, 결국은 오기인지는 모르겠지만 남은 전쟁에서도 승리를 거두고 그들에게로 돌아옵니다. 기드온은 그들에게 돌아가면서 자기에게 수모를 준 숙곳과 브누엘을 잔인하게 초토화시키고 그곳 거민들을 집단적으로 살해하는 만행을 저질렀음을 본문이 우리들에게 알려줍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냉정하게 기드온을 향하여 질문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왜 기드온을 불렀습니까? 미디안에게 7년 동안이나 고통을 당하는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는 도구로 사용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사사기 7:9절을 끝으로 하나님은 기드온의 사역에서 나타나시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시작하신 것처럼 여겨지는 이 전쟁에서 하나님은 손을 떼신 것처럼 보이는 장면이 오늘 본문을 포함하여 7:9절 이후에 여실히 나타납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시던 무대에서 하나님이 사라지자 기드온은 그때부터 하나님과 전혀 관계없는 사람의 모습으로 돌변하여 사사가 아닌 동족을 죽이는 살인자로 변질됩니다. 설상가상으로 사람에 의해 상처받고, 사람들에게 휘둘리다가 본인 스스로 비극적인 말년을 보낸 것은 물론 그의 아들 대(代)에서는 더 어처구니없는 가계의 참극을 경험해야 했던 비운의 주인공으로 성경에 남게 되었습니다. 이상의 기드온 사역을 기록한 본문을 통해 어떤 영적인 교훈을 저와 여러분은 담지 해야 하겠습니까?

● 하나님이 우리 무대에서 사라지면 우리들의 삶은 랜덤의 삶으로 추락합니다.

사사기가 보여주는 영적인 단면은 단지 기드온뿐만 아니라 일체의 사사들의 행적을 통하여 이 점을 알려줍니다. 하나님이 우리들의 무대 정 중앙에 계시지 않고 사라지게 되면 그때부터 우리들의 삶은 막 사는 인생으로 추락한다는 점을 결코 망각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의 삶의 정중앙에 항상 계셔야 합니다. 교회를 사유화하는 땅을 칠 일들이 버젓이 백주에서 일어나고 있는 내사랑하는 한국교회에 큰 울림을 주고 아름다운 퇴장을 한 이재철 목사께서 쓰신 사명자반을 읽었을 때 가슴을 때렸던 사자후를 소개하고 글을 맺습니다.“주일 예배가 끝나고 예배당 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우리는 주님을 과거형으로 잊어버린다. (중략)한국 그리스도인들이 간증을 좋아하면서도 삶이 성숙해지지 않는 것은 결국 주님을 과거형으로만 기억하기 때문이다.” (p.131)그리스도인들은 예배당은 물론, 예배당 문을 열고 나가는 내 삶의 현장 정 중앙에 언제나, 항상, 늘 계실 때만 진짜 그리스도인들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라지면 나도 사라지는 것을 잊지 않는 저와 독자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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