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순례(8)

  • 입력 2019.02.07 08:54
  • 기자명 컵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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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수 목사
▣ 영월주님의교회 

▣ 전 터키 선교사 

고린도(헬라어 코린토스 )

그리스의 중남부에 위치한 고린도는 아테네에서 약 8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도시로서 그리스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가운데 하나이다. 고대로부터 고린도가 중요한 도시가 된 이유는 지리적으로 무역과 군대가 이동하는 길목에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리스의 본토와 남쪽에 위치한 펠레폰네소스 반도와 연결되는 고린도는 군사적으로 중요한 전략적인 요충지가 되었으며, 해상무역을 위해 스페인, 이탈리아, 시칠리아에서 온 선박들이 항해시 폭풍을 피해 남단의 길을 선택하지 않고 폭이 좁은 고린도 만과 사로니코스만 사이에 있는 지협을 선호하였던 것이다. 또한 소아시아와 북아프리카의 이집트에서 출발한 배들이 에게 해를 지나 안전을 위해 이곳 가까이에 있는 겐그레아의 동쪽 항만 시설에 정박하였으니, 고대로부터‘고린도 지협은 바다의 다리’로 알려진 것은 우연이 아니다.

고린도가 역사적으로 황금기를 맞게 된 때는 기원전 7세기로 보고 있는데, 당시 고린도 만에 있는 ‘포세이돈’(헬라의 바다의 신) 신전에서는 2년 마다 ‘이스트미아’ 경기 대회가 거행되었다. ‘이스트미아’ 제전은 고대 이곳의 4대 대회 중 하나로 개최지인 고린도 지협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고 바다의 신으로 불리는 포세이돈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 졌다. 이러한 의미에서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에서 신앙의 경주에서승리하기 위해 예로 든 운동경기가 바로 이 이스미안 게임으로 알려져 있다.

24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25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고전9:24~25 )사도 바울이 고린도를 방문한 시기는 주후 50년경으로, 그는 아테네에서 선교하면서 혼신을 다했으나 별로 영적인 열매를 거두지 못하고 착잡한 심정으로 고린도로 오게 되었다. 따라서 사도행전 저자인 누가는 고린도에 도착했을 때 그의 마음 상태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내가 너희 가운데서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고전 2:3)

아테네에서 선교하면서 냉대를 받고 무거운 마음으로 고린도에 도착한 사도 바울은 이제 철저히 낮아진 자세로 복음을 전하였다. 따라서 그의 겸손과 하나님에 대한 신뢰는 결국 고린도에서 선교의 꽃을 피우는 계기가 되었다. 주님은 이렇게 낮아진 그에게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라는 신실한 동역자를 붙여주고 용기를 얻게 하였던 것이다.

2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한 사람을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3 생업이 같으므로 함께 살며 일을 하니 그 생업은 천막을 만드는 것이더라(행18:2~3)본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결혼해서 로마에서 살고 있었으나, 주후 50년경 글라우디오 황제가 로마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을 추방하자 고린도에 와서 천막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절망가운데 고린도에 도착한 바울에게 이들 부부와의 만남은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바울에게는 현지 선교에 큰 도움이 되었음이 분명하다. 바울은 로마서 16장에 로마교회를 향하여 편지하면서 자신의 동역자가 된 이들 부부에 대한 사랑과 감사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3 너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4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 (롬16:3~4)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선교하는 바울을 위해서 자신의 집을 제공했으며, 또한 1년 6개월 동안 사도바울이 이곳에서 선교사역을 할 수 있도록 전적으로 후원을 하였다. 뿐만 아니라 후에 바울이 소아시아의에베소로 가서 선교할 계획을 세우자 이들은 먼저 에베소로 가서 사도 바울의 사역을 준비하였고, 바울이 로마로 갈 계획이 있음을 알자 그들은 먼저 로마로 가서 바울을 기다리고 있었던 자들로, 선교 사역을 위해서 목숨을 내놓는 것을 조금도 아깝게 생각하지 않았던 신실한 동역자였던 것이다. 필자는 수년전 소아시아에서 선교 사역을 하면서 잠시 해외 한인 교회를 섬기며 동시에 현지 선교를한 적이 있다. 교인이 얼마 되지 않은 한인 교회를 섬기고 틈나는 대로 주말이 되면 가난한 달동네에 가서 교인들과 함께 마련한 옷가지와 신발을 현지 어린이들에게 나누어 주며 복음을 전한 적이 있다. 비록 더디지만 시간이 지나자 현지인들은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열고 복음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고 마침내 예수님을 영접하는 단계에 이르게 되었다.

그런데 우리 선교 사역에 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와 같이 신실하게 동역한 김 집사님이 아직도 생각이 난다. 이들 부부는 멀리 울산에서 자동차 회사에 다니다 우리가 거주하던 곳에 발령을 받아 일하게 되었는데, 현지 선교를 하는 우리에게 말없이 다가와 늘 큰 힘이 되었고, 현지인들이 믿음이 성장하여 어느 날 새벽에 흑해 바다에 나가 세례식을 할 때에도 이른 새벽에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온 신실한 동역자들이었던 것이다. 우리 부부는 이들 부부를 생각할 때마다 지금도 동역자로 우리에게 보내 주신 주님께 감사하고 있다. 이제는 폐허가 된 우상의 도시 속에 잔재만 남아있는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 신전을 뒤로하고 들판에 흐드러지게 핀 양귀비꽃을 바라보며 우리 일행은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선교 사역을 하는 신실한 선교사들을 위해 오늘은 조그만 격려의 편지라도 한 장 쓰고 싶은 심정으로 발길을 옮겼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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