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찰회→노회→총회 조직 갖춘 장로회, 3·1운동 구심점 됐다

  • 입력 2019.02.27 14:29
  • 기자명 강원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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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변환_3.1운동과 스코필드-김광성 작가.jpg

“일본 사람 모욕하지 말고, 돌을 던지지 말고, 주먹으로 때리지 말라. 매일 세 시 기도, 주일엔 금식. 매일 성경 읽되, (월) 이사야 10장, (화) 예레미야 12장, (수) 신명기 28장, (목) 야고보 5장, (금) 이사야 59장, (토) 로마서 8장”- 3·1운동 기독교인 시위 행동강령 <독립단 통고문> 中

3·1운동은 일제 헌병과 경찰의 야만적 폭력, 구차, 살상, 고문에 저항한 대표적인 ‘비폭력 평화적 시위’로서 전 세계에 본보기가 되고 있으며, 서울 종로에서 시작되어 전국으로 들불처럼 번진 독립만세시위가 일어난 지 벌써 100주년이 됐다.

한국장로교회를 대표하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총회(총회장 림형석 목사) 역사위원회 및 삼일운동백주년기념사업위원회가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여 전수조사에 나서서 진행했던 연구자료를 한국교회에 공개했다. 위원회는 3·1운동 역사의 실체를 파악해 역사적 진실을 규명하고, 특히 전국 각 지역에서 일어난 3·1운동의 교회현장을 방문해서 조사를 벌였다.

3·1운동 당시 개신교 교인은 전체인구의 1.8%에 그치는 29만 명이었으나 만세시위자의 30%가 개신교 교인이었으며, 체포당하고 투옥당한 사람의 20%가 개신교 교인이었다고 하니 3·1운동에서 개신교인들의 영향력이 결코 적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위원회는 보고서를 통해 “전국의 마을과 장터에 3·1운동시위 격문이 나붙었고 독립선언서가 손에서 손으로 전달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교인들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며 “마을 단위의 장로교회가 전국으로 통하는 조직망(시찰회→노회→총회)을 갖추고 있었기에 그 역할이 가능했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이번 전수조사를 통해 수집된 사료들을 살펴보면 성진, 함흥, 원산지역을 아우르는 함남노회는 “3월3일 지역 교회의 교인들과 학교의 학생들이 ‘독립만세’에 참가했고, 많은 사람들이 체포·구속되어서 악형으로 고문을 당했다. 함흥감독에 복역하는 교우는 26명인데 이 중에서 여학생이 2명이다. 지역의 기독교학교들은 독립만세사건으로 몇 달 휴학하였다가 다시 개학했다”는 기록을 남겨두었다.

평양, 대동군, 덕천, 령원, 맹산, 강동, 성천, 순천, 안주, 중화동명, 수안곡산 등의 지역이 속해있던 평남노회의 “노회 소속 학교가 67개인데 독립만세 참여로 말미암아 개학하지 못한 학교들이 있다. 노회 산하의 교회들 역시 한동안 예배당 회집이 금지 당했다. 헌병과 경찰이 학교와 교회의 유리창과 집기와 가구를 마구 파손했다”는 기록 역시 이번 위원회 전수조사를 통해 전해졌다. 이 기록에 따르면 당시 평남노회 소속 교인 중 208명의 교인이 수감됐고, 감옥에서 태형을 90대 맞은 교인이 47명, 경찰서와 주재소에서 태형을 29대 맞은 교인이 68명, 총상을 당해 사망한 교인이 12명, 총칼에 부상당하고 악형을 당한 교인은 80명이었다.

위원회는 이번 전수조사에 나서면서 국가기록원의 ‘만세시위 적극가담자 종교별 분류’ 속 개신교인 가운데 ‘장로회’로 분류돼 있는 1440명에 주목하고, ‘1440 프로젝트’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나섰다. 이치만 교수(장신대)는 “1440명 대부분은 그 이름이 알려져 있지 않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하여 장로교인으로 추정되는 1440명의 이름을 찾아줘야 할 필요가 있다”며 현재까지 알려진 기독교인 120여 명의 인물연구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예장 통합총회는 3·1절을 사흘 앞둔 2월26일 만세운동의 발원지인 종로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에서 ‘3·1운동 100주년 기념예배 및 행사’를 열고 ‘3·1운동 100주년기념 한국교회 선언서 낭독’, 독립유공자 후손 격려금 전달, 3·1운동 참여교회 기념동판 수여 등 뜻 깊은 순서들을 진행했다.

크기변환_3.1운동 통합.jpg

이날 기념예배에서 림형석 총회장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시 18:1~6) 제하의 설교를 통해 “일제의 압제 속에서 신음할 때 곳곳마다 은밀한 가운데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던 한국교회의 많은 성도들이 있었다. 그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께서 우리나라에 독립을 허락하시고, 신앙의 자유를 허락하셨으며, 교회성장에 더해 민족의 번영을 허락하셨다”며 “이 은혜를 거저 받은 우리 후손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고 감사하며 그 사랑을 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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