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의 성령, 왜 대언의 영?(요한복음 16:13~24)

  • 입력 2019.03.14 11:56
  • 기자명 컵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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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목사(서울중앙교회)

주님은 “보혜사, 진리의 성령은 대언의 영”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대언의 역사를 이루기 위해 진리의 성령이어야 만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본문의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혼란을 느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성령의 진리라고 하는 것을 우리 임의대로 생각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에 감추었던 당신의 진리를 이 땅에 전파하려고 하면 그만큼 오해되기 쉽고 착각하기 쉽고 왜곡되기 쉽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그대로 전달할 수 있는 것도, 믿고 깨달을 수 있게 하는 것도 하나님의 성령이 아니면 안 되는 것입니다. 비록 사람의 언어를 사용할지라도 거기에 담고자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그저 단순히 껍질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담겨있는 하나님의 깊은 뜻은 진리의 성령이 아니면 결코 우리에게 전달할 수가 없습니다.

‘진리의 성령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한다!’ 이처럼 진리의 성령이 대언의 영이 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입니까? “내가 하는 말은 내 말이 아니라 내 아버지의 말이다. 나는 들은 대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리고 이제 진리의 성령이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다.”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받은 진리를 우리에게 전했던 것처럼 성령도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것을 가지고 우리에게 알리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 있는 것이 다 예수님의 것이 되었고, 이제는 진리의 성령이 예수님의 것을 가지고 우리에게 대언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역사는 단지 예수님을 믿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데까지 가게 갑니다. 또 성령의 역사가 우리 가운데로 이어져 임하여 “너희가 매면 나도 맬 수 있고 너희가 풀면 나도 풀 수 있다!”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대언의 역사는 어떠한 방법으로, 어떻게 이루어집니까? 대언의 역사는 하나님께서 당신 스스로 한계를 제한하셔서 하신 일입니다. ‘아브라함이나 선지자에게 알리지 않고는 아무 것도 하지 않겠다.’우리는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 속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죽은 자가 살아나면 믿을 것입니다!” 부자는 자기 형제들에게 나사로를 보내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모세와 선지자의 대언의 역사를 믿지 않으면 죽은 자가 살아나도 믿지 않는다고 얘기합니다. 주님의 음성은 오직 성령의 대언의 역사를 통해서만 들려진다는 것입니다. “모세와 선지자가 있지 않으냐!” 사람을 통해서 이루시는 성령의 대언의 역사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랑과 축복을 우리에게 나타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인도하심을 따라 은혜와 보좌 앞에 함께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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