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 상실증후군

  • 입력 2019.05.17 09:00
  • 기자명 컵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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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국 목사.jpg

고병국 목사 (한소망교회)  
[프로필]
▣ 협성대학교 신학과 졸업
▣ 감리교신학대학교 선교대학원 졸업
▣ 서울남연회 강동지방 감리사 역임
▣ 온맘 닷컴 “목회칼럼” 연재
▣ 한소망교회 담임목사
 

나이가 들어가면서 나타나는 현상 중 하나는 현실에 안주하려는 것이다. 한창 젊었었을 때의 모험과 꺾을 줄 모르는 비전은 점점 세월이 흘러가면서 어느새 스르르 사라지고 안일과 현실에 안주하려는 심리가 더 강해진다. 그래서 스스로나이 탓이라고 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어느 날 이래서는 안되는데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세계적으로 요리의 종류는 참 다양하다. 프랑스에는 유명한 ‘삶은 개구리’요리가 있다. 이 요리는 손님이 앉아 있는식탁 위에 버너와 냄비를 가져다 놓고 직접 보는 앞에서 개구리를 산 채로 냄비에 넣고 조리하는 것이다. 이 때 물이 너무 뜨거우면 개구리가 펄쩍 튀어나오기 때문에 맨 처음 냄비 속에는 개구리가 가장 좋아하는 온도의 물을 부어 둔다. 그러면 개구리는 따뜻한 물이 아주 기분 좋은 듯이 가만히 엎드려 있다. 그러면 서서히 가열하기 때문에 개구리는 자기가 삶아지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기분 좋게 잠을 자면서 죽어가게 된다.

 

우리들의 삶도 어쩌면 당장 먹고사는 걱정이 없으니까, 다른 사람보다 이만하면 되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에 빠져 지금자기가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채 그럭저럭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 때가 없지 않다. 그것은 마치 자기를 요리하는 물이 따뜻한 목욕물이라도 된다는 듯이 편안하게 잠자다가 죽어가는 개구리의 모습과 같은 것이다. 이런비전 상실증후군은 인간을 가장 비참하게 만드는 것이다. 최근에 모 교회가 전도를 열심히 한다고 해서 지인 목사들과 같이 교회를 탐방 한 적이 있었다. 그 교회는 주변에 아파트가 둘러 있는데 전원교회 같았다. 교회 주변이 나무와 조경을 참 잘 해 놓았다. 눈에 유독 들어오는 것 중 하나는 잘 가꾸어진 분재나무들이다. 참 탐이 날 정도로 보기가 좋았다. 우리들 주변에 분재를 취미삼아 키우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 소나무 분재나 참나무 분재를 보면 아름답고 예쁘기도 하다.SNS에 분재로 가꾼 나무들을 교회 강단장식으로 가끔 사진을 올리는 목사님이 있다.

 

볼 때마다 참 예쁘다. 한번 분재를 배워보고 싶다 하는 생각이 든다. 분재로 키운 소나무, 참나무, 단풍나무 등은 특징이 키가 작다. 그것이 기술이다. 일종의 나무 난장이인 셈이다. 정상적인 소나무는 토양과 바람, 온도 습도 등 조건만 잘 맞으면 5층짜리 건물 높이보다 더 크게 자랄 수 있다. 그러나 화분에 심어진 분재소나무는 수 십 년을 키워도 불과 20~30센티미터 밖에 자라지 않는다. 그것이 기술이다. 분재기술자는 키는 크지 않으면서 생명만 유지하도록 나무들을 길을 들인다. 즉 나무의 성장 잠재력을 제거하는 것이다. 이렇게 길들여진 나무는 원래의 크기대로 성장할 수 없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많은 사람들이 비전상실 증후군에 걸려 분재된 나무처럼 살아가고 있다. ‘나는 연약해’ ‘나는 지식이 모자라’ ‘나는 배경이 없어’ ‘나는 가난한 집안 출신이야’하는 식으로 마음속으로부터 자신의 가치와 존재의 위대성, 가능성을 잘라내고 살아간다. 마치 성장이 멈춘 난장이나무처럼 말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느끼는 것이 ‘이 나이에 무엇을 더 해’ ‘내 나이가 지금 얼마인데’ 하는 한계를 자꾸 짓고, 아무런 도전도 모험도 비전도 품지 않고 현실에만 안주하여 시간만 그냥 보내려고 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다. 그러다가 어떤 사람이 나이가 무색하리만큼 용기를 가지고 도전을 하고 모험을 하는 모습을 보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다. 어느 날 모방송에서 이런 저런 사업을 실패하고 나이가 환갑을 지난사람이 모델에 도전해서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담은 영상을 보았다. 참 신선했다. 그리고 도전이 되었다. ‘아 저렇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구나.’ 하고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이런 글을 보았다. “오직 내가 도달하려는 높이까지만, 나는 성장할 수 있다. 오직 내가 추구하는 거리까지만, 나는 갈수 있다. 오직 내가 살펴볼 수 있는 깊이까지만, 나는 볼 수 있다. 오직 내가 꿈을 꾸는 정도까지만, 나는 될 수 있다.” 비전은 도전을 통해서 생기는 것이다. 우리들의 삶 속에 아무런 도전이 없다면 현실의 안일주의자가 되고, 오늘의 현실에 안주하려는 사람으로 전락하고 결국은 매너리즘에 빠져도 전도 없고 비전도 없고 그렇고 그런 사람으로 살아가고 마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우리들은 누구인가?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는 도전을 받고 꿈을 꾸는 사람,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들의 인생이 보람과 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 된다. 여러분은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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