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순례(14)

  • 입력 2019.06.07 09:31
  • 기자명 컵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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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수 목사
▣ 영월주님의교회 

▣ 전 터키 선교사 

밧모 섬(Πάτμος, Patmos)

‘밧모섬’은 사모스 섬으로 남서쪽으로 45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는데, 면적은 34.05평방Km, 남북의 길이는 16Km, 동서의 폭은 가장 넓은 지점이 10Km, 그리고 해안선의 길이는 63Km로 현재 이 섬에는 약 3000명 정도가 살고 있다. 사도 요한이 유배되어 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을 기록한 밧모섬으로 가는 길은 배로 아테네의 ‘피레우스 항구’에서 가는 방법과 터어키에 속한 에베소에서 배로 가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그리스 아테네에서 가면 9시간 정도 걸리고 터어키쪽에 있는 ‘쿠사다시’(Kusadasi) 항구에서 배로 출발하면 약 4시간 남짓 걸려 밧모섬에 도착하게 된다. 우리 일행은 밧모섬에서 거리상으로 가까운 두 번째 방법을 선택하였는데, 미지에 대한 기대감으로 잔뜩 부푼 가슴을 안고 에게 바다를 타고 밧모섬으로 향했다. 이른 아침 배를 모는 선장은 지금은 여름이라 바다가 잔잔하지만, 계절이 바뀌어서 가을이 되면 조석으로 날씨가 변덕이 심해져 날마다 이른 새벽에 항만청에서 그 날 바다의 파고를 측정하여 배의 출항을 통제한다고 귀띔 해준다. 배를 타고 가는 우리는 사도 요한이 사역했던 에베소를 떠나 호수처럼 잔잔한 푸른 바다를 감상하며 찬양하며 항해했으나, 당시 이곳 섬으로 가던 사도 요한이 90세가 넘는 노구를 이끌고 육지를 떠나 척박한 밧모섬으로향했다고 생각해 보니, 갑자기 이렇게 편하게 여행을 해도 되는지 송구스러운 생각이 온 몸을 감싼다.

이제 출항 후 약 3시간이 넘자 멀리 밧모섬의 ‘스칼라’(Skala) 항구가 희미하게 눈에 아른거린다. 선장은 배에 붉은 색 바탕을 한 터어키 국기를 떼어 하늘 색 바탕에 십자가 모양을 한 그리스 국기를 배에 게양하기 시작하면서 멀리 흐리게 보이는 섬이 밧모섬이라고 친절하게 가르쳐 준다. 사도 요한이 밧모섬으로 유배되어 가게 된 때는 96년 경 당시 로마 황제인 도미티안 황제 때라고 알려져 있다. 그는 약 2년간 이 척박한 섬에 머물면서 낮에는 채석장에서 고된 일을 하고 밤에는 기도하면서 주님과 대화하던 중에, 먼 발치에 희미하게 보이는 요한 계시록에 언급된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대한계시의 말씀을 주님으로부터 환상 중에 받아 우리에게 전해 주고 있다. 9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하였음으로 말미암아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10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되어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11 이르되 네가 보는 것을 두루마리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등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요한계시록 1:9~11) .밧모섬을 방문하는 순례객들이 가장 궁금하여 으뜸으로 꼽는 곳은 단연 사도 요한이 요한 계시록을 쓴 계시동굴이다.

배에서 내린 우리 일행은 설레는 마음을 가지고 땀을 흘리며 약 40여분 남짓 부지런히 걸으니 벌써 사도 요한이 계시를 받았다고 하는 조그만 동굴에 도착하였다. 출입문 옆에는 1999년, 이곳이 ‘유네스코’(UNESCO)에 ‘세계유산’으로 등재됨을 알리는 ‘동판’이 새겨져 있다. 이제 출입문 위에는 아름다운 모자이크가 선명히 새겨져 있다. 그것은 나이 들어 눈이 어두워진 사도 요한을 대신하여 주님으로부터 받은 계시의 내용을 대신 기록하고 있는 사도 요한의 제자인 ‘브로고로’ 집사와 사도 요한이 ‘모자이크’로 새겨져 있는 모습이다. 사도행전 6장에 보면 초대 교회 일곱 집사들 가운데 한 분인 ‘브로고로’ 집사는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그가 사도 요한을 따라 이곳까지 와서 사도 요한을 대신하여 글을 써 주옥같은 요한 계시록을 우리에게 남겼다고 생각하니 그의 신실한 모습에 다시금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동굴 안으로 가니, 동굴 입구 위편에 사도 요한이 책과 펜을 들고 있는 벽화가 눈에 들어오고, 비록 작은 동굴이지만 칸막이를 설치하여 안쪽에는 이곳에서 예배드리기 위해 사제만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있어 놀랐다. 이만큼 이곳을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 듯하다. 이곳을 지키는 검은 옷을 입은 희랍 정교회 소속 사제는 매일 오전에 이곳에서 예배를 드린다고 속삭이듯 말해주었다. 한편, 동굴 안쪽에는 빈 의자가 있는데, 그것은 매일 이곳에서 예배할 때 예배를 돕는 찬양대석으로 알려져 있어 우리는 불현듯 요한을 생각하며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우리 주님을 찬양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사도 요한의 계시 동굴에서 나와 조금 올라가면 1713년에 세워진 밧모 신학교 (PatmiasEcclesiastical School)가 있다.

과거에 이곳은 희랍 정교회의 사제들을 양성했던 우수한 교육기관으로 많은 학생들이 이곳에서 교육을 받았으나, 지금은 수가 크게 줄어 이제 한산한 느낌마저 든다. 신학교에서 나와 산 정상으로 올라가면 1999년 ‘유네스코’에서 ‘세계유적지’로 등재된 웅장한 모습을한 ‘요한 수도원’과 만나게 된다. 이곳은 비잔틴 제국의 황제, 알렉시오스 코메노스 1세(Alexios IKomnenos)가 1088년에 당시 군인이자 사제였던 ‘크리스토둘러스’(Christodoulos)에게 거룩한 신학자로 알려진 사도 요한을 기념하기 위해 수도원을 만들 것을 명하자, 3년에 걸쳐 수도원을 건축하였다고 하는 곳이다. 그는 군대생활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 지역에 자주 출몰하는 해적과 바다 건너에 있는 셀죽 터키족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성곽을 높이 세워 수도원을 요새화하였는데, 그 모습이 멀리서 보면 수도원의 모습이라기보다 거대하고 웅장한 성처럼 보인다. 특히 수도원 안에는 박물관과 도서관이 있는데, 그 중 6세기에 기록된 마가복음서는 수도원에서 가장 아끼는 보물로 매 첫 장마다 서두를 순금으로 글씨를 썼고, 그 나머지는 은으로 기록하였다. 그만큼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여 성경말씀을 오랫동안 보존하고 간직하고자 하는 수도사들의 간절한 마음을 느끼게 한다. < 계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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