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인과 신앙인

  • 입력 2019.09.06 10:03
  • 기자명 컵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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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동욱 목사(예정교회) 

누가복음 20장 41~47절

41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사람들이 어찌하여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냐 42시편에 다윗이 친히 말하였으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43내가 네 원수를 네 발등상으로 삼을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니라 44그런즉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으니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라 45모든 백성이 들을 때에 예수께서 그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46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을 원하며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의 윗자리를 좋아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 47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니 그들이 더 엄중한 심판을 받으리라 하시니라

사람들에게 어떤 종교를 믿느냐고 물어보면, 기독교나 불교, 천주교라고 대답하거나, 아니면 교회나 절, 성당에 다닌다고 대답합니다. 다니는 것과 믿는 것은 차이가 큽니다. 누군가가 교회나 절에 다닌다고 하면 그는 그곳이 자신에게 위로가 되기 때문에 그냥 다니는 것입니다. 이들은 종교인입니다. 그러나 신앙인은 다릅니다. 종교인은 종교를 가진 사람이지만, 신앙인은 그 종교를 전적으로 믿는 사람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기독교를 종교의 하나로 인정하고자 합니다. 그런데 기독교인만은 자신이 믿는 신을 유일신이라고 주장합니다.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 구원받을 수 있다며 구원의 길을 선포하고, 신앙인으로서의 삶을 요구합니다. 그래서 다른 종교나 종교인들과 부딪히곤 합니다. 지금 세상은 이미 종교 다원주의가 자리를 잡은 분위기여서 다른 종교들과 이해와 화합을 도모하는 시대가 되어버렸습니다. 이런 풍조 가운데 기독교가 독단적이라는 비판을 받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기독교는 종교의 하나가 아니라 유일한 신앙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은 그야말로 ‘종교적인 사회’였습니다. 그 나라에 살던 모든 유대인은 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율법을 읽고,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며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도 종교인이 있었고 신앙인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 사실을 정확히 파악하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본문 말씀에서 서기관과 과부를 비교하시면서 우리에게 종교인과 신앙인의 차이에 대한 교훈을 주시고자 했습니다. 종교인은 자기가 바라는 신을 찾지만 신앙인은 유일한 절대주권자를 믿습니다. 당시 메시아를 지칭하는 여러 이름 중에 ‘다윗의 자손’이라는 명칭이 있었는데, 이 명칭에 대해 유대교의 서기관들은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메시아는 분명히 혈통적으로 다윗의 자손으로 태어나도록 구약에 예언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유대인들은 오실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이 아니라 다윗처럼 정치적으로 힘 있는 군주였으면 하는 기대를 했습니다. 다윗왕이 통치하던 시절에 강성하고 번영했던 이스라엘을 사모하면서, 오실 메시아가 바로 그 다윗왕의 통치 능력을 발휘해서 이스라엘에 또다시 정치적, 경제적 전성기를 가져다주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런 기대감으로 메시아를 ‘다윗의 자손’이라 불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메시아는 순전히 자신들이 스스로 바라는 존재에다 이름만 메시아라고 붙여놓은 것에 불과했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믿어야 할 신앙의 대상인 매시아를 기다린 것이 아닙니다. ‘메시아는 당연히 이래야 할 것이다’라는 기대감으로 자신들이 마음대로 그려놓은 존재를 기다린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지금도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메시아에게 최후 심판의 날이 올 때까지 하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도록 명하셨습니다. 이는 메시아가 정치적 군주가 아님을 분명히 하는 것입니다. 비록 육신적으로는 다윗의 혈통을 타고 태어날 메시아지만 그 메시아는 다윗왕에게도 주가 되시며, 더욱이 이스라엘의 왕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셔서, 장차 최후의 심판을 주도하실 심판주이심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종교인들은 신이라는 존재를 자기 생각이나 자기 필요에 따라 인식하고 찾기 때문에 다른 신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자신이 믿는 신이라는 존재를 사람들의 판단에 좌우되는 무력한 신으로 전락시킵니다. 그러나 참된 신앙인은 그런 식으로 신을 찾거나 만나지 않습니다, 종교인은 사람을 의식하지만, 신앙인은 하나님을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것처럼 헌금도 많이 하고 사람들 앞에서 긴 옷을 입고 잘난 척하는 서기관들은 종교인에 불과 합니다. 오히려 과부처럼 가난하지만 전 재산을 드릴 만큼 사모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신앙인입니다. 기독교는 예수님이 ‘영원 전부터 영원 후까지 스스로 살아계신 분’이심을 유일한 전제로 삼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의 신앙인은 자기 쪽에서 바라는 신들을 무수히 만들어내는 우상 숭배적인 종교인과는 다릅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일깨워 주셨고 성경이 밝히 말하는 절대주권자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고 사모하며 의지하는 것입니다. 바다로 나갈 준비가 된 연어의 변태를 ‘스몰트’(smolt)라고 합니다. 강가에 살던 연어가, 몸은 유선형이 되고 비늘은 은빛으로 바뀌며 아가미는 바닷물에 잘 견딜 수 있는 형태로 변합니다. 과거의 모습으로는 바닷물에서 마음껏 헤엄치며 살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영적 스몰트를 경험해 거듭난 시각을 가져야 합니다. 영적 스몰트를 경험한 사람은 더 이상 세상의 잣대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바라는 도덕군자가 되기보다 하나님 앞에서 신앙 인격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성령과 피로 거듭나서 종교인이 아닌 신앙인의 삶을 살아가게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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