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풍 목사의 일생은 ‘산 순교자’의 생애였다”

  • 입력 2017.06.26 15:36
  • 기자명 강원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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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장로교회 최초 선교사이자 순교자인 이기풍 목사를 기리는 기념사업회가 조직됐다.

한국기독교문화유산보존협회(법인이사장 이태희 목사, 이하 한기문)는 23일 여수제일교회에서 이기풍목사기념사업회 창립총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는 이기풍 목사의 후손들과, 교회사학자들, 이기풍 목사가 사역했던 제주, 여수, 광주, 고흥, 벌교 등지의 교회 관계자들이 참여했다.

한기문은 기독교역사 및 문화유산 발굴사업의 일환으로 호남 및 제주지역 선교에 큰 역할을 한 이기풍 목사 관련 기념사업을 추진하기로 하고, 지난 5차례의 준비모임을 거쳐 이날 창립총회를 개최했다.

한기문 사무총장 임영근 목사는 “이기풍 목사님은 평양신학교 최초 졸업생 중 한 사람으로 제주 선교를 개척하시고,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고문의 후유증으로 여수 우학리교회에서 숨지신 한국교회사의 중대한 인물”이라며 “복음을 위한 고인의 희생과 박애정신을 널리 선양하고자 사업회 결성을 추진했다”고 밝혔다.

이날 총회에서 여수제일교회 김성천 목사가 이사장을, 여수중앙교회 이호윤 목사가 수석공동회장을 각각 맡기로 했으며, 학술연구팀, 기획전략팀, 문화재팀, 홍보개발팀, 재정관리팀, 교육개발팀 등을 두어 구체적인 사업들을 펼쳐나갈 방침이다.

김성천 목사는 “여수엑스포를 앞두고 복음엑스포네트워크를 구성해 이기풍 목사님의 전기를 한글 영어 중국어 등 3개 국어로 편찬한 바 있다”면서 “이후 관련 연구와 조명작업이 따르지 않아 아쉬웠던 차에 기념사업회 발족으로 다시 명맥을 잇게 됐다”며 성실한 역할을 다짐했다.

김 목사는 계속해서 “한국교회 목회사역과 선교사역의 선구자로서 이기풍 목사님의 생애를 널리 알리고, 순교하기까지 굽히지 않았던 불굴의 신앙을 널리 알리는데 힘쓰겠다”면서 전국에 흩어진 고인의 자료를 수집하는 데 먼저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날 개회예배는 박창건 목사(제주동흥교회) 사회로 드려져 이호윤 목사가 기도하고, 김성천 목사가 ‘별과 같이 빛나는 인생’ 제하의 설교를 전했다. 임화식 목사(순천드림교회) 축도로 진행됐다. 또한 예장합동 여수노회장 박종갑 목사의 인사, 증경총회장 변남주 목사 축사, 맹연환 목사(광주 문흥제일교회) 환영사 등의 순서도 마련됐다.

예배 후에는 고등신학연구소장 김재현 목사의 진행으로 학술심포지엄이 진행됐다. 이기풍 목사의 증손자로서 발제에 나선 이준호 목사는 ‘이기풍 목사 연보 및 생애에 대한 연구’를 주제로 고인의 주요 행적을 짚었으며, 김호욱 교수(광신대), 김천식 교수(전주대) 등이 토론에 참여했다.

이준호 목사는 이 자리에서 이기풍 목사의 출생에서 순교까지 일대기를 차례로 설명하면서 고인의 출생일, 평양신학교 입학일, 제주도로 출발하여 도착하는 과정 등에 대한 <순교보> 등 기존 기록들의 오류를 바로잡았다.

특히 회심 이전 이기풍 목사를 직업 없는 한량처럼 표현한 것은 사실에 부합하지 않으며, 이기풍 목사가 던진 돌 때문에 마포삼열 선교사의 턱에 커다란 흉터가 생겼다는 일화도 잘못 알려진 것이라는 점을 여러 사료들을 통해 구체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이준호 목사는 결론적으로 “이기풍 목사의 일생은 한 마디로 ‘산 순교자’의 생애였다”고 정의하면서, 고인이 보여준 십자가 영성과 순교영성이 정확히 드러날 수 있도록 여러 오해들을 수정·보완하는 작업에 후대 역사가들이 힘써줄 것을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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