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웃에게 어떤 존재인가(눅 10:30~37)

  • 입력 2017.09.07 10:09
  • 기자명 컵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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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향희 목사 (든든한교회)

이 세상을 살다 보면 여러 가지 문제들을 경험하게 되고 시험과 환란, 고통을 겪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마다 많은 사람들은 그 문제들과 어려움들을 남의 탓으로 돌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 경제, 사회가 달라져야 한다고 외치기도 하고, 너희가 변하여야 한다고 하면서 세상 탓, 사회 탓으로 여기곤 합니다. 심지어는 교회 탓, 목사 탓, 성도들 탓을 합니다. 그러나 남의 탓을 하기 전에 내 탓으로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다른 곳이 또한 다른 사람이 변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나 자신이 변화되고 내 가정, 내 교회, 내 직장, 내 나라가 새롭게 변화되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싫어하는 말이 있습니다. 척, 때문에, 차차 등 이런 말은 주님이 싫어합니다. 잘난 척, 가진 척, 배운 척, 많이 일한 척, 교회와 주님을 사랑하는 척, 주의 종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척, 이런 것들은 주님께서 싫어하십니다.

주님이 먼저알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을 속일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차차’란 말을 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차차하지, 차차 전도하지 하다가 ‘기도할 걸, 전도할 걸’ 하면서 후회하는 말이 오게 됩니다. 주님의 일은 즉시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모리아 산에 가서 바치라’ 했을 때 아브라함은 ‘차차’ 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은 말씀을 받은 즉시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그러므로 즉시 해야 합니다. 사람이 기회를 놓치면 그 축복과 은혜의 기회가 영영 안 올수도 있습니다. 특별히 남에게 책임전가하지 말고 항상 자신에게서 문제를 찾아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 살아가는 데는 나 혼자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웃에게 어떤 존재로 살아가고 있는지’ 늘 살펴보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세 종류의 신자가 있습니다. 첫째는 철새신자가 있습니다. 철 따라 날아다니는 새처럼 기분 따라, 환경 따라 변하는 신자입니다. 둘째는 박쥐신자입니다. 날짐승 편이 유리하면 날개를 쫙 펴고, 들짐승 편이 유리하면 날개를 오므리고 기어 다닙니다. 박쥐신자는 이중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신자를 가리킵니다. 여기 붙었다 저기 붙었다 하는 기회주의자 또는 파벌 주의자를 가리킵니다. 셋째는 독수리 신자가 있습니다. 독수리는 환경에 움직이지 않고 비바람, 눈보라가 쳐도 개의치 않고 창공을 향해 올라갑니다. 누가 어떤 말을 해도 시험거리가 와도 개의치 않습니다. 변하지 않고 자기 사명 감당하는 신자가 독수리 같은 신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나는 어떤 신자인가?’ 즉 ‘나는 이웃에게 어떤 존재인가’를 생각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강도 만나서 거의 죽게 된 자를 보고 레위인과 제사장은 그냥 지나쳤지만, 사마리아 사람은 강도를 만나거의 죽게 된 그 사람을 구해주었습니다.

◈ 나는 이웃에게 어떤 존재입니까?

본문에 보면 네 종류의 사람들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선한 사마리아인은 이웃에게 어떤 존재였는지를 살펴보고, 나는 어떤 존재로 살고 있는지 살펴보시기를 바랍니다.

① 이웃을 불쌍히 여겼습니다.(관심, 마 15:32)

② 이웃에게 가까이 갔습니다.(행동, 요일 3: 18)

③ 기름과 포도주를 부었습니다.(희생, 막 14:3)

④ 자기 짐승에 태워서 주막으로 데려갔습니다.(끝까지 사랑을 베풀었습니다. 본문 34~35)

⑤ 예수님은 이웃을 사랑하되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했습니다.(눅 10:27)

◈ 율법사가 예수님께 접근할 때는 진심으로 영생을 어떻게 얻어야 할지를 알고 싶어서 물어본 게 아닙니다. 예수님을 비웃고 난처하게 하려고 질문을 던졌지만 예수님은 크게 두 가지로 답변합니다. 첫째는 하나님 사랑, 둘째는 이웃 사랑입니다.입술로만 사랑을 외치고 잘 믿는 척 하지 말고, 사마리아 사람 같은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강도 만난 자의 진정한 이웃은 바로 사마리아 사람입니다. 우리는 좋은 이웃을 만나야하고 또한 내 자신이 좋은 이웃으로 함께 살아야 할 것입니다. 성도는 목자를 잘 만나야 되고 목사도 역시 좋은 성도 잘 만나는 것이 복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정말 좋은 이웃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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