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찻집에서 가깝게 지내는 시인 한 분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로부터 “시는 쓰는 것이 아니라 사는 것이다.”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우리는 그가 요즘 어떤 시를 쓰고 있는지 궁금해 했지만 그는 시를 쓰는 것보다 시를 사는 일에 더 관심이 많았습니다. 나는 시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어찌 시만 그렇겠습니까? 설교자로서 그의 말을 설교에 적용하면 “설교는 하는 것이 아니라 사는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어느 신학교 설교학 교수가 설교 시험을 치르는 세 명의학생에게 ‘선한 사마리아인’ 본문을 가지고 설교를 준비하도록 했습니다. 시험시간 교수실에서 각각 다른 길을 걸어가 다른 장소에서 설교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가는 길목에 고장 난 휠체어를 타고 가다 넘어진 장애우를 똑같이 배치해두었습니다.
놀랍게도 세 명의 학생 중 넘어진 장애우를 일으켜 주고 고장 난 휠체어를 고쳐주고 시험장으로 간 학생은한 명도 없었습니다. 설교는 설교일 뿐이었고 삶이 되지 못했습니다. 아무리 논리정연하고 수사학적으로 완벽한 설교라 할지라도 삶이 반영되지 않은 설교는 성도들에게 감동을 줄 수 없습니다. 말로만 설교해서는 효과가 없습니다. 설교자가 말씀대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사람들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영국 런던의 동부 지역에서 감리교 소속으로 38년간 목회하던 렉스 목사님이 어느 날 한 노인이 몹시 아프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를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그 노인은 고개를 돌린 채 말 한 마디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대화를 나누기 위하여 애쓰던 렉스 목사님은 냉랭한 난로와 바닥나기 시작한 식량을 알아챘습니다.
그 집을 나선 목사님은 두 덩어리의 양고기를 그 집에 배달해주도록 주문했습니다. 며칠 후 목사님은 또 그 집을 방문했습니다. 노인은 전보다는 약간 다정하게 대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던 목사님은 또 다시 양고기를 주문했습니다. 세 번째 심방을 하게 되었을 때, 그 노인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그 결과 렉스 목사님은 노인과 함께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그 후 렉스 목사님은 설교 부탁을 받아 며칠 동안 런던을 떠나 있게 되었습니다. 돌아온 목사님은 그 노인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노인은 마지막 순간에 이렇게 말하더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렉스 목사님에게 전해주십시오. 이제 나는 곧 하나님께 돌아갑니다. 이처럼 나를 변화시킨 것은 목사님의 설교가 아니라 목사님께서 나를 위하여 사 주셨던 양고기였다는 사실입니다!” 기독교는 실천의 종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