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강석 목사 목양칼럼] 빚쟁이 목사 잡아가세요

  • 입력 2018.04.08 07:37
  • 기자명 컵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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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2년 전 저는 새에덴 30년사 편찬을 위해 김재일 장로님을 준비위원장으로 임명했습니다. 

이분은 한국일보 기자로 시작해서 시사저널 정치부장을 하셨고, 누구보다 기자 근성과 객관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분입니다. 그래서 외부전문가에게 새에덴 30년사를 맡기려다가 김장로님께 맡겼습니다. 왜냐면 팩트의 나열이나 객관적인 서술도 중요하지만 지나온 30년 동안의 역사를 오늘의 의미로 해석하여 정리하고 미래를 조망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마침내 몇몇 역사 전문가들을 자문위원으로 모시고 30년사 편찬위원회를 발족했습니다. 그래서 2년 동안 편찬위원들이 부지런히 사료를 모으고 교역자들도 파트별로 자료를 정리하여 사역사를 정리하였습니다. 

총 3권의 책을 준비하고 있는데, 새에덴 개척에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역사를 스토리 중심으로 엮은 통사와 사역사, 그리고 사진으로 보는 새에덴 30년사입니다. 다른 교회 역사를 보면 대부분 교역자들과 중직자들 이름을 나열해 놓고 지나온 사역의 팩트만 열거한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 교회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려는 마음 없이는 흥미가 없어서 읽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팩트를 나열하는 사역사는 따로 엮어서 내부용으로 사용하고 보존하며 우리 교회를 전혀 모르는 분들과도 소통하고 감동의 기폭제가 될 수 있는 스토리 중심의 통사를 엮어서 한국교회에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편찬위원들이 거의 2년 동안 준비해 초고가 나왔습니다. 정말 그 분들의 노력을 치하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원고를 보니까 방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스토리를 엮어 나가는 데는 훌륭했지만 드라마틱한 감동보다는 나열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선광현목사님이 한 달여가 걸려서 제목이나 언어를 현대적으로 바꾸고 나열순서도 이야기식으로 내러티브하게 꾸몄습니다. 그렇게 해서 어느 정도 정리된 원고를 넘겨받았습니다. 그런데 바빠서 도저히 한 2주 동안 원고를 못 봤습니다. 그러다가 홍콩으로 총회경목부 수련회를 인도하러 가서 거기서 보려고 했습니다. 전날 잠이 부족해 비행기에서 좀 자려고 탑승 후 밥도 안 먹고 수면제까지 먹었는데 자꾸 원고 생각이 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원고를 보기 시작했지요. 그런데 얼마나 원고에 빨려 들어버렸는지 도착할 때까지 계속 읽고 또 읽었습니다. 너무 감동이 되어서 그 감동이 수면제 약기운을 이겨버린 것입니다.

물론 팩트가 다르거나 사실을 다르게 기술한 부분은 수정하기도 했지만, 그걸 보면서 눈물이 앞을 가렸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은혜에 빚진 자요, 성도들의 헌신에 빚진 자였습니다. 개척 초기에 와서 지금까지 남아 있는 사람들, 도중에 온 사람들, 도중에 떠난 사람들에게까지 모두 다 빚진 자였습니다. 물론 비행기 안에서 끝까지 다 읽지는 못하고 내렸습니다. 홍콩에 도착하여 노아의 방주를 보는데도 계속 남은 원고를 보고 싶은 것입니다. 마음이 새에덴 30년사라는 콩밭에 있었습니다. 홍콩 순복음교회에서 개회예배 설교를 하는데도 빨리 끝내고 호텔 들어가서 원고를 읽고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저녁식사를 하고 다른 분들은 홍콩 야경 본다고 하는데 저는 유송근 장로님과 택시를 타고 호텔로 들어왔습니다. 호텔방이 추워서 히터를 켰는데 계속 에어컨 바람이 나왔습니다. 나중에 보니까 홍콩은 에어컨 밖에 안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덜덜덜 떨면서 원고를 다 읽어버렸습니다.

원고를 다 읽고 나자 저는 더 큰 빚쟁이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너무 교회 생각이 나고 교인들 생각이 났습니다. 다음날은 마카오를 가는 일정이 있었습니다. 사실 저는 홍콩을 몇 번 갔지만 마카오는 한 번도 못 갔습니다. 원래는 마카오도 같이 가기로 약속을 했거든요. 그런데도 자꾸 교회만 오고 싶어서 패널티를 물면서까지 비행기 스케줄을 바꾸어서 교회로 왔습니다. 저는 큰 빚쟁이 일 뿐만 아니라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환자처럼 오로지 교회 밖에 생각이 안 나는 것입니다. 다음날 마카오에 가면 호텔 특실에서 쉴 수도 있고 사우나 시설도 잘 되어 특별한 쉼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고 하지만 오로지 교회만 오고 싶었습니다. 교회 온다 한들 크게 달라지는 게 없지만, 교회 와서 다음날 성도들과 같이 수요오전예배를 드리는데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하나님께 빚진 자요, 새에덴 모든 성도들에게 빚진 자입니다. 그래서 요즘은 빚쟁이 목사가 되어 만날 사방으로 잡혀 다닙니다. 지난 월요일도 여기저기 약속해 놓아서 비서실에서 잡은 스케줄과 비서실을 통하지 않은 저와의 직통 약속으로 혼선이 빚어져서 정신없이 뛰어 다녔습니다. 그러면서 저도 모르게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아이고, 여러분, 이 빚진 자, 언제든지 잡아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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